올해 초 일본에서 오랜만에 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10여 명의 출연자 거의 전원은 1980년대 출생이었다. 정치·경제 분야 연구원, 정보기술(IT)계 기업가나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심지어는 승려까지 다양한 소장파들이었다. 설날인데도 정장 차림의 출연자는 없었다.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온 듯한 사람도 있어 처음에는 사회 반발의 스타일인가 생각했다. 그들의 취업 시기는 지금의 한국과 같은 '대(大)빙하기'. 또래의 절반이 불안정한 직업밖에 얻지 못한 세대였다.
그러나 출연자들은 대학 중퇴자로 학비로 창업하거나 오랜 세월 세계를 방랑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 사람들이었다. 부자나 저명 인사의 자녀도 아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공지능(AI)과 사회'라는 화두에 일제히 날카롭고 뜨겁게 반응한 것이었다. 나라가 쇠퇴해도 앞을 보는 젊은이들은 살아 있다는 생각에 믿음직스러웠다.
2010년 이후 선진국 공통 화제의 하나는 AI에 따른 변화다. AI 기술이 명령의 실행(스마트가전 수준), 자신의 사고(컴퓨터 바둑 수준), 자동학습(데이터에 기초한 의료 진단 수준)의 단계를 거쳐 점검 사항을 인간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억을 추적해서 결과를 내는 심층학습 단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실제 심층학습 단계에 들어간 2014년부터는 다차원의 화상이나 음성 인식이 가능해 IBM의 AI를 탑재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Pepper)'가 등장했고, 자동차 운전과 농사 짓기, 물류 무인화 등이 실용화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2025년에는 언어의 벽이 깨지고 번역 등에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가 인간을 공격하는 사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오즈번 옥스퍼드대학 교수가 2013년에 발표한 '향후 10년에 사라질 직업'에는 10~20년 내에 미국 고용의 47%가 기계로 대체된다고 했다. 시계 수리공이나 건설 기계 운영자 등에 머물지 않고 은행 대출 담당자와 신용분석가, 경리·회계감사 사무 등도 90% 없어질 전망이다. 의사나 변호사 업종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AI가 100만건 단위의 의료보고서나 환자 기록과 임상시험, 의학 잡지 등을 분석해 환자의 증상이나 유전자 경력 등을 가미하고 최선의 치료 계획을 만드는 실험이 진행된다. 법률 분야에서는 AI가 수천 건의 변론 취지서와 판례를 들여다보고 그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언어 장벽이 줄면 다른 나라의 법률을 조사하거나 협상 자료를 만드는 공무원도 크게 필요 없게 된다.
그럼 현재 기준의 '안정'을 믿고 젊고 유연한 머리를 표준화 경쟁에 바치고 부모도 과잉 교육투자 부담을 필사적으로 참고 견디는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장래 리스크가 보이고 있을까. AI가 인간을 크게 웃도는 정보 처리와 분석, 판단력을 가질 때 하나뿐인 정답을 요구하고 1점을 다투는 경쟁만 주입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구원이 없지 않다. AI는 많은 일을 대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분야를 낳는다. 복잡한 현상을 분리하거나 윤리를 따지지 않는 AI 관련 업무는 당연히 확대하고, 인간을 격려하거나 동기를 마련하는 경영, 교육·예술 등의 분야는 남을 것이다. 인간끼리의 커뮤니케이션 욕망이 인간의 본질성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정을 가진 종래의 한국 사회에는 AI의 등장은 오히려 복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경쟁사회는 거꾸로 향하고 있다. 한 명씩의 개성을 무시한 '스펙'이나 '성형 미인'을 강요하는 사회는 경쟁의 패자나 경쟁에서 벗어난 사람을 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물론 상냥함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직업적으로 어떤 시장 가치로 전환될지 아직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쟁 상대를 밀어내는 것밖에 모르는 획일 경쟁의 승자가 곤란에 직면할 때 현재의 '안정'을 전제로 한 투자는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먹고사는 기개가 필요하다. 혁명 시대에 대한 방어책이 되는 것은 유연한 사고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는 교양 기반이다. 당장 눈앞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교육 개혁으로 과연 한국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학 교수]
출처 : 2016년 2월 2일 매일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