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6일 오전 11시 서울 광나루 과학공원 내 한강공원 광나루 모형비행장. 최성욱(41)씨가 3m 앞 땅바닥에 놓인 500g짜리 쿼드로터(프로펠러가 네 개인 기체) 드론을 조종기를 조작해 공중으로 띄웠다. 양손 엄지로 조종기 스틱 2개를 앞으로 눕히니 드론이 '쐐앵' 하며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드론은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바닥에 표시해 놓은 200m 길이 M자형 트랙을 따라 움직였다. M자를 세 번 도는 데 수십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2. 지난 17일 오후 3시 청주 충청대 드론 비행장. 장영철(49)씨는 조종기 오른쪽 스틱을 앞으로 눕혀 22㎏짜리 옥타로터(프로펠러가 여덟 개인 기체) 드론을 수직으로 띄웠다. 장씨와 드론 사이엔 20m 안전거리가 확보돼 있었다. 교관 구령에 따라 장씨의 드론은 상하·좌우가 각각 10m 남짓한 십(十)자형 트랙을 느리게 왔다갔다했다. 장씨는 드론을 이용한 농약 살포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초경량 비행장치 조종자 증명'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관은 "농업에 이용되는 산업용 드론은 시속 10~20㎞의 느린 속도라도 정확한 움직임으로 안전하게 비행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드론 산업이 팽창하면서 '드론이 있는 풍경'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취미용 작은 드론들이 순간 시속 100㎞ 넘는 속도로 날아다니고, 다른 한쪽에선 위성항법장치(GPS)가 달린 큰 드론들이 방제·유통·촬영 등 산업 기능을 맡고 있다.
세계 드론 대회 총상금 10억원 넘어
드론(drone)의 사전적 의미는 '웅웅거리는 수벌'이다. 1930년대 영국 해군이 사격 연습 표적용 무인항공기에 처음으로 드론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 뒤 줄곧 군용 무인기를 지칭해오다 최근 상업용 드론 시장이 커지면서 모든 종류의 무인기에 이 명칭을 붙이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드론을 이용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부문으로 물품 수송, 시설물 관리, 국토 측량, 레저 등 8대 유망 산업 영역을 발표했다. 현 법령상 드론을 이용할 수 있는 산업이 촬영·산림 관측·농업 등에 한정된 것을 앞으로 다양화하겠다는 의지였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레저용 '레이싱 드론'이다. 다른 부문은 우선 관련 산업체와 정부가 협의를 거쳐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한 후에 본격적인 시장 수요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레이싱 드론은 이미 국내에서 상당한 수요층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회원 수 약 2000명의 국내 대표적 레이싱 드론 동호회 '레이싱 드론 코리아'의 권용상(33) 대표는 "작년 10월 총상금 2000만원 규모 전국 대회가 열렸고, 오는 3월에는 총상금 100만달러(약 12억2800만원) 규모 세계 대회가 두바이에서 열리는 등 상금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론 레이싱 대회는 한 경기에 네다섯대 출전한 드론 중 깃대나 에어 게이트(air gate·아치형 구조물) 등의 장애물을 규정대로 통과해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는 기체가 이기는 게임이다. 현재 국내 드론 레이싱 동호인 수는 약 2만명으로 추산된다.
레이싱 드론은 보통 400~800g 중량 쿼드로터형이 일반적이다. 그보다 무거우면 시속 70~80㎞ 이상 평균 속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드론 조종 시 눈에 특수 고글을 쓰면 드론 앞부분에 달린 소형 캠에서 고글로 영상이 전송돼 마치 자신이 드론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체와 조종기, 비행용 고글까지 합쳐 최소 100만원이면 구매가 가능한 저가형 드론이기 때문에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드론 부품 판매업자 양근혁(33)씨는 "레이싱 드론은 완제품이 거의 없고 부품별로 팔린다"며 "마니아들은 성능이 천차만별인 모터, 변속기, 전원 분배 보드 중에서 직접 골라 컴퓨터를 조립하듯 드론을 조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항식 한국모형항공협회 사무국장은 "약 50억여원 규모인 국내 레이싱 드론 부품 시장에서 중국제 저가 부품에 밀려 한국 기업의 비중은 5% 미만"이라며 "만약 한국의 드론 레이싱 클럽이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브랜드 파워가 조금씩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12㎏ 이상은 국가 자격증 있어야
드론은 택배 사업 쪽으로도 활로를 뚫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11월 드론을 이용한 배송을 2017년까지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에는 드론에서 떨어뜨리는 택배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배송 용기를 특허등록하기도 했다. 작년 드론 유통·물류 분야에서 시범 사업자로 선정된 CJ대한통운은 3㎏ 정도 화물을 반경 20㎞ 내 지역에 시속 60㎞ 속도로 운송할 수 있는 6㎏짜리 드론을 개발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5월부터 도서산간 지역에 드론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3년 개정된 항공법에 따르면 무게 12㎏ 이상 드론을 영업용으로 쓰려면 국가에서 발급한 '초경량 비행장치 조종자 증명'을 갖춰야 한다. 이 자격증이 도입되기 전 방제용 무인 헬기가 자주 추락한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만약 자격 없이 드론으로 농약 살포 등 영업을 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작년 조종 자격증 취득자 수는 897명으로 그간 총 1600여명이 조종 자격증을 취득했다. 작년 신고된 12㎏ 이상 드론은 968대였다. 김 사무국장은 "보통 영업용 기체를 파는 업체에서 조종 자격 교육까지 시켜주기 때문에 신고된 기체 수와 자격증 취득 수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12㎏ 미만 드론으로 시범 진행했던 철탑 안전검사 사업을 올해 본격화하기 위해 현장 직원들이 조종 자격을 취득하게 하고 있다. 작년 시범 사업 결과 높이 40~50m 철탑 꼭대기에 있는 절연체가 일부 파손되고 전국에 걸쳐 다수의 전봇대 위 전선이 손상된 것을 드론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할 수 있는 드론으로 장시간 철탑을 관찰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법상 드론은 아무데서나 뜰 수 없다. 서울 한강 이북 대부분 지역과 휴전선 인근 지역, 공항에서 반경 9.3㎞ 내 지역 등은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12㎏ 미만 드론은 비행금지구역 이외의 모든 곳에서 자유롭게 비행 가능하지만, 12㎏ 이상일 경우 지정된 초경량 비행장치 비행구역을 벗어나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만 비행이 가능하다. 단, 농경지에서의 방제용 드론은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비행체가 무거우면 그만큼 사고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비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주 한서대 무인항공기학과 교수는 "드론은 기계역학, 비행역학, 통신전자 등 여러 가지 기술이 하나로 집약된 복합 산업물"이라며 "우리 시장이 세계시장에 비해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만큼 관련 지원 법제들을 꾸준히 만들어 산업이 융성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아두면 유익한 정보 (0) | 2016.03.04 |
---|---|
시총 100대기업 재편..'중후장대' 지고 '비굴뚝' 떴다 (0) | 2016.03.02 |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의 차이점의 핵심은 "대상" (0) | 2016.02.15 |
항공 수하물 지연 사고 대처법 (0) | 2016.01.29 |
상위 0.1% 독서광은 무슨 책을 많이 볼까 (0) | 201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