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보쉬는 글로벌 기업에 납품… 한국 中企는 특정 대기업 하청신세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는 전 세계 100여개 자동차 완성업체에 제동장치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독일 자동차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매출의 77%를 독일 이외 지역에서 얻고 있다. 그 덕분에 보쉬는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서는 부동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를 보면 일본(30개)·미국(25개)·독일(18개)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대형 완성차 업체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 기업들이다. 반면 한국은 5개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얽매이지 않는 창업 제조업체 중 매출 1조원이 넘는 곳은 서울반도체, 휴맥스, 한미약품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들은 수직 계열화라는 한국 특유의 산업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채 특정 대기업의 납품 업체로 머물러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R&D(연구·개발) 자본 축적이나 기술 개발은 엄두도 못 낸다.
실제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비(非)계열 납품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9%(2014년 기준)로 집계됐다. 이는 세계 자동차 부품업체 평균 이익률(7.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다른 분야의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의 우량 중소기업을 뜻하는 '히든 챔피언' 숫자도 한국은 23개로, 독일(1307개)·미국(366개)·일본(220개) 등에 훨씬 못 미친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한국 제조업 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2/2016042200350.html
대기업들, 납품社에 "가격내려라" "우리 경쟁업체엔 납품 말라"
中企, R&D나 투자 엄두도 못내
세계적 우량 中企인 히든챔피언… 한국 23개, 中 68개, 獨 1307개
지방에 있는 한 부품업체 대표 A씨는 작년 자동차 내부 공조와 엔진 관련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요즘 해외시장 판로를 위해 국내 완성차 업체 몰래 해외 출장을 다닌다. 이 사실을 완성차 업체가 알면 납품 물량을 줄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A씨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중소기업들이 독자 개발한 기술은 인정하지 않고, 3%도 안 되는 마진율로 납품 단가만 깎으려 한다"며 "최악의 경우 국내 완성차 업체와 거래가 끊기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특정 대기업의 납품 업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 효율성' '제품 기밀 보호' 등을 내세운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의 그물망'에 갇혀 새로운 혁신과 판로 개척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성장 동력이던 수직 계열화, 이제는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수직 계열화는 국내 대기업이 선진 기업들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follower·빠른 추격자)'일 때 강점이 있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은 완제품에서 부품까지 일괄 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단기간에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고, 협력 업체도 안정적 납품 물량을 확보하며 대기업과 동반 성장했다. 수직 계열화는 대기업이 사세(社勢)와 고용을 확대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 ▲ 계기판, 보관함 등으로 구성된 자동차 대시보드를 생산하는 한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의 생산라인(왼쪽)과 충청남도의 한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에서 직원들이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을 활용해 무게를 줄인 경량화 부품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신현종 기자
하지만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대기업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수직 계열화는 중소기업의 활력과 혁신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대기업의 경영 상황이 힘들어지자 과거의 성공 모델이었던 수직 계열화는 '중소 협력업체 쥐어짜기'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대기업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다.
자동차용 램프를 생산하는 B씨는 요즘 납품 대기업으로부터 단가 인하 요구를 받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보통 CR(Cost Reduction)이라 부르는 단가 인하 요구는 매년 초 한 차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수시로 추가적인 CR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 구매 담당자가 인건비와 공장가동비, 재료 금액 등을 마음대로 산출해 놓고, 납품 계약서에 사인만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B씨는 "대기업 요구대로 하면 마진율이 3%도 안 된다"며 "연구개발(R&D)은 고사하고, 공장 돌리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한 전자부품 업체 대표 C씨도 비슷한 처지다. C씨는 "조만간 '경영 진단'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장부 검열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에 잠이 안 온다"며 "이렇게 매년 납품 단가가 깎이면 미래를 위한 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특정 산업 부진 땐 줄줄이 붕괴
과도한 수직 계열화는 대기업 스스로에도 부담이다. 주력 사업 하나가 흔들리면 관련 회사들이 모두 줄줄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STX다. 선박 엔진-조선소-해운회사로 수직 계열화를 이룬 STX그룹은 한때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재계 서열 13위까지 올랐지만, 해운업이 침체되면서 조선과 중공업 수익 구조도 동반 악화돼 그룹이 붕괴했다.
삼성그룹이 비(非)주력사 매각에 나선 것도 수직 계열화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엔 삼성전자의 실적이 개선되면 1차 협력사인 삼성전기의 실적도 덩달아 좋아졌지만 최근엔 이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 실제로 1분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갤럭시S7의 판매 호조로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삼성전기는 오히려 작년 1분기보다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정부 규제와 소액 주주의 영향력 때문에 계열사들을 대놓고 지원해주기도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실장은 "수직 계열화 안에서는 중소 부품 업체들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할 자본을 축적할 수 없다"며 "부품의 경쟁력이 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소싱' 시대에는 수직 계열화 모델이 생명력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직계열화
기업이 계열사나 협력업체를 통해 원료에서부터 부품 생산, 완성품의 제조·판매·사후관리까지 수직적 체계를 만들어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자동차 회사가 철강 계열사로부터 차체를, 계열 부품사로부터 브레이크·전장도 공급받는 것이다. 한 발 나아가 특정 중소기업에도 자신에게만 납품하도록 해 사실상의 계열사 역할을 하도록 한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2/20160422004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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