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벤처 90%가 M&A 되는데 한국선 100개 중 3개밖에 안돼
국내 엔젤투자자, 美 33분의 1… 초기 투자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창업해도 3~7년새 투자금 부족… 실패 땐 '전과' 낙인, 재기 어려워
- ▲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멤버십 카드 등을 저장해 쓸 수 있는 전자지갑 서비스‘얍’. 사진은 GS25편의점에서 얍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습. /얍컴퍼니 제공
전자지갑 서비스 '얍'을 운영하는 안경훈 얍컴퍼니 대표는 지난 10년간 세 번 창업하면서 매번 '전쟁'을 치렀다. 2006년 첫 창업 땐 투자자를 못 구했다. 지인들에게 몇 천만 원을 빌려 겨우 자본금을 댔다. 2009년 두 번째 창업 때는 '실패한 사업가'라는 편견에 부딪혔다. 1년여간 쫓아다닌 끝에 한 이동통신 대기업과 서비스 제휴를 하고 나서야 겨우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어렵게 사업이 자리를 잡자, 이번에는 제휴했던 대기업이 '우리가 직접 사업하겠다'고 나섰다. 어쩔 수 없이 지분을 정리하고 물러나자 일부 투자자는 "대기업을 믿고 투자했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 돈은 세 번째 창업을 하면서 받은 투자금으로 갚았다. 안 대표는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한국에서 창업하기가 겁이 나더라"면서 "그래서 얍 서비스는 아예 처음부터 해외로 나가는 모델로 만들었다"고 했다.
◇벤처 키울 줄 모르는 벤처 투자자들
이는 비단 안 대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창업자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외국에서는 창업 실패가 값진 경험으로 인정받지만 우리는 '전과'로 낙인찍히는 일이 허다하다. 그만큼 신생 기업을 키워주는 사회·경제적 기반(생태계)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우리는 초기 투자를 받기부터가 어렵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벤처 창업자 중 엔젤투자자(초기 창업 자금을 대주는 투자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은 10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엔젤투자자 수는 미국의 33분의 1, 투자 액수는 200분의 1 수준이다.
어렵사리 벤처 투자자를 만나도 투자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이건희 이엠코어 전 대표는 "시제품이나 서비스가 없으면 투자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반드시 눈앞에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있어야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초기 벤처(스타트업)가 시제품을 만드느라 빚을 끌어다 쓰거나, 회사 목표와 상관없는 다른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창업 이후 겪는 어려움은 더 크다. 온라인 이사 서비스를 하는 한 벤처기업 대표는 "창업 3년 만에 초기 투자금을 다 쓰고 투자를 더 받으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면서 "결국 다른 회사의 서비스 개발 하도급으로 근근이 버티다 새로 창업해야 했다"고 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벤처 투자의 40%는 상장 직전 벤처에, 30%는 창업 3년 미만 초기 벤처에 몰려 있다. 이 때문에 창업 3~7년 사이에 투자 부족으로 주저앉는 벤처가 10곳 중 6곳이다.
◇벤처·중소기업 베끼는 대기업
한국에선 대기업이 기술력 있는 벤처 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인수해 벤처 성장을 돕는 시스템과 문화도 정착돼 있지 않다. 구글이 유튜브를, 페이스북이 사진 공유 서비스 인스타그램을 인수해 핵심 서비스로 키웠지만 우리는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 국제 회계 컨설팅 업체 EY는 최근 "미국 벤처는 10곳 중 9곳이, 한국은 100곳 중 3곳이 M&A를 당한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대신 기술을 베껴서 시장에 진입한 뒤 중소기업을 고사시키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김치냉장고다. 김치냉장고는 위니아만도가 1995년 '딤채'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지만 대기업들이 이내 쫓아 들어와 시장을 장악해 버렸다. 김치냉장고 시장이 확대된 측면도 있지만 위니아만도는 경쟁에 밀리고 수차례 매각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현택환 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는 "한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벤처캐피털도 없고, 대기업도 중소기업 기술에 정당한 대가를 내지 않고 돈을 벌려 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3/2016042300281.html
2012년 말 국내에서 온라인 화장품 유통업체 '소코글램(Sokoglam)'을 창업한 교포 2세 샬럿 조와 데이비드 조 부부는 창업 6개월 만에 미국 뉴욕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들은 "한국보다 미국이 벤처를 창업해 키워나갈 환경이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남편 데이비드가 다녔던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은 학생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각종 창업 실무 수업과 유명 벤처인 초청 강좌를 수시로 열었다. 학생 창업자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무실과 무료 상담 서비스도 알선해줬다. 특히 '멘토 교수'가 따로 있어 월 2회씩 학생들의 창업 과정을 살펴보고 조언도 해줬다. 창업 자금을 구하기도 쉬웠다. 한국에서는 인맥(人脈)이 닿지 않으면 만나기 힘들었던 엔젤 투자자를 미국에서는 사무실만 찾아가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창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문화가 달랐다. 데이비드와 샬럿 부부는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 창업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제정신이냐'라고 말렸지만, 미국에서는 '축하한다. 내가 뭘 도와줄까'라고 했다"고 말했다. 소코글램은 지난해 300만달러(약 3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60억원의 시장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이처럼 벤처 창업을 북돋고 키워주는 창업 생태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창업 생태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창업을 '기회'가 아닌 '위험(risk)'으로만 보는 문화가 만연하다. 서승우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는 "한국 공대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들 대기업에 취업하려 하지만, 미국 공대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3/20160423002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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