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우자

이것이 우리가 몰랐던..디스 이즈 더 초딩 라이프~

Freedom-x 2016. 1. 21. 08:52

[한겨레][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초딩 라이프
사랑고백, 데이트, 가루쿡, 스마트폰 게임, 보니하니…초등학생의 일상 속으로

박미향 기자 mh@hani.co.kr'>“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곗바늘 보면서,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경적소리, 어깨를 늘어뜨린 학생들, 디스 이즈 더 시티 라이프.”

신해철이 이끈 밴드 넥스트가 1993년 발표한 노래 ‘도시인’의 도입부 가사다. 23년이 흘렀지만, 한국 사회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악화일로다. 공부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학생의 연령은 점점 낮아져 초등학생들도 공부 광풍에 내몰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가 펴낸 ‘2014 어린이생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님께 많이 듣는 말 1위는 ‘공부해라’(30.2%), 2위는 ‘숙제해라’(9.2%)였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교육방송> 프로그램 <생방통 톡!톡! 보니하니>에 출연중인 이재인(12·왼쪽 아래)양이 진행자인 ‘보니’ 신동우(왼쪽 위), ‘하니’ 이수민(오른쪽 위), 개그맨 최영수(오른쪽 아래)와 함께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교육방송> 프로그램 <생방통 톡!톡! 보니하니>에 출연중인 이재인(12·왼쪽 아래)양이 진행자인 ‘보니’ 신동우(왼쪽 위), ‘하니’ 이수민(오른쪽 위), 개그맨 최영수(오른쪽 아래)와 함께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재 전국 초등학생 수는 270만명이다. 저출산의 여파로 매해 감소 추세지만 여전히 초등학생은 나라의 미래다. 동시에 조롱의 대상이기도 하다. ‘초딩’이라는 신조어는 ‘버릇없음’이나 ‘무개념’이라는 말과 동일시된다. 초등학생들도 할 말은 있다. 지금의 ‘초딩’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어른들인데 비난의 화살은 항상 초딩에게만 향한다는 것이다. 초딩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사랑과 관심인데도 말이다.

그들을 이해해보고자 가상의 초등학생의 입을 빌려 초등학생들의 일상을 담아봤다. 공부만 강요하는 사회이지만 그들에게도 라이프스타일은 분명 존재한다. 이해를 하면 오해를 할 일이 줄어든다. 디스 이즈 더 초딩 라이프!

같은 반 여학생이 좋아졌어요
카톡으로 고백하니 생각해본대요
아싸! 내일 데이트하기로 했어요
미용실 가서 파마를 해야겠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초딩초등학교 5학년 이철수라고 합니다. 방학이라 좋겠다고요? 모르는 소리 마세요. 방학에도 방과후 학교 때문에 학교에 다녀요. 방과후 학교 마치면 학원에 가고요. 놀고 싶은데, 부모님은 제 얼굴만 보면 공부하라고 하네요.

공부도 스트레스지만 요즘 저의 큰 고민은 사랑이에요. 같은 반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됐거든요. 무슨 초등학생이 사랑이냐고요? 헐! 한반에 3~4커플 정도는 기본이랍니다. 초딩이 왜 이성친구가 필요하냐고요? 우리도 외로워요. 부모님한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맞벌이라 항상 바쁘시니, 친구들한테 더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반 친구들하고는 단톡방을 열어 말을 하곤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이성친구가 좋아요. 서로 의지할 수 있거든요. 어른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이성교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부모님은 이런 얘길 하면 코웃음부터 치시죠. 왜 인정을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스킨십도 해요.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포옹을 하기도 해요. 이런 걸 알면 어른들이 쇼크 받겠죠? 쇼크 받기 전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벌써 이성교제를 하는데 저는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아무튼 전 얼마 전에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같은 반 재인이예요. 반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서로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하고요. 남자들은 괜히 장난도 걸고 그래요. 재인이가 눈에 들어온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키도 크고, 완전 제 스타일이에요.

이미 고백도 했어요. 고백은 어떻게 하냐고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카톡을 통해 고백을 많이 해요. “Four, ear, ruler”라고 먼저 고백을 했죠. 무슨 소리냐고요? 아니 이것도 몰라요? 사(four), 귀(ear), 자(ruler)잖아요.

재인이는 “생각해볼게”라며 확답을 안 했어요. 마음이 상했죠. 하지만 전 포기하지 않아요. 계속해서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어제는 카톡으로 “금요일 방과후 학교 끝나고 쪼마카페 가자”라고 했더니 “조아”라고 답이 왔어요. 재인이는 가루쿡이나 미니어처를 좋아하거든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요? 가루쿡이나 미니어처는 예전에 어린이들이 갖고 놀던 찰흙을 생각하면 돼요. 그걸로 초밥이나 돈가스 같은 음식 모형을 만드는 거예요. 가루쿡은 만들어서 먹을 수도 있어요. 가루쿡은 일본 제품이고 미니어처는 국산 제품이 많아요. 남자들은 잘 안 하지만 여자 초딩들 사이에선 인기 대박이에요. 쪼마카페는 바로 이런 제품을 사서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어린이용 공방 같은 곳이고요. 주스 등을 시켜 먹으면서 가루쿡 등을 만들 수 있어요. 초등학생 데이트 코스인 셈이죠.

남학생들 사이에선 게임이 대세예요. 특히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안 하는 친구들이 없어요. 원래는 피시(PC)용 게임이었는데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어요. 정육면체 형태의 블록들로 이뤄진 가상의 세계를 곡괭이로 캐고 다니면서 아이템 등을 얻고 몬스터와 싸우는 게임이에요. 이 게임의 인기가 많아져서 유튜브 등으로 이 게임 중계방송을 하는 어른들도 많아졌어요. 특히 ‘양띵’ 누나는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 최고예요. ‘악어’나 ‘공갈’도 유명해요. 이 누나나 형들이 하는 거 보면 너무 신기해요. 이렇게 빨리 잘하는 사람이 있나 싶어요. 원래 남이 게임하는 거 보는 것도 재밌잖아요. 예전에 어른들은 스타크래프트 중계방송을 봤다면서요? 그거랑 비슷한 거예요.

한 초등학생이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하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하고 있다.

김미란씨 제공'>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이제 교육방송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를 봐야 할 시간이에요. <보니하니> 몰라요? 거기 진행하는 보니하고 하니가 요즘 ‘초통령’이에요. 그 시간에 어른들은 <6시 내 고향>을 본다는데, 저희는 무조건 <보니하니>예요. 여학생들은 남자 진행자인 보니를 좋아하고, 남학생들은 여자 진행자인 하니를 좋아해요. 요즘 하니 좋아하는 아저씨들도 많다는데, 나잇값을 좀 하시죠!

<보니하니>에서 ‘행운의 여보세요’라고 돌림판 돌려서 상품 주는 코너가 있는데, 저도 계속 전화 연결 시도하지만 연결된 적이 없어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요. 오늘도 다시 시도해봐야겠어요.

<보니하니>를 보고 나선 엄마와 미용실에 가야 해요. 내일 재인이하고 데이트도 있어서 특별히 파마를 하기로 했어요. 미용실에 가면 원장 아줌마가 태블릿피시를 보여주며 원하는 스타일을 고르라고 해요. 어릴 땐 엄마가 하자는 대로 했는데 이번엔 제가 원하는 걸로 할래요. 너무 꼬불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엔 약간 갈색으로 염색도 할까봐요.

아, 참, 요즘 어른들이 초등학생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저희도 초딩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진 않아요. ‘버릇이 없다, 개념이 없다’고 하는데 모든 친구들이 그러는 건 아니에요. 특히 질 떨어지는 포털 댓글을 가리켜 ‘초딩’이라고 매도하는데, 저희 그런 식으로 댓글 달지 않아요! 초등학생들이 볼만한 뉴스도 없답니다. 흥칫뿡!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참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어린이연구원 3기 연구보고서, 2015년 11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 2014 어린이생활실태조사 보고서,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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