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혁신국가' 한국의 슬픈 자화상
많이 배우고 연구해도 제대로 만든 것 없다
세 번 연속 전교 일등을 했다. 그런데 기분은 영 개운치가 않다. 점수만 보면 일등인데, 실제 실력은 영 전교 일등답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딱 그런 상황이다.
무슨 얘긴지 의아할 분들이 좀 있을 것 같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일단 한국이 전교 일등한 얘기부터 한번 해보자.
블룸버그는 19일(현지 시각) 매년 발표하는 ‘블룸버그 혁신 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에서 한국이 91점으로 최고점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2위에 랭크된 독일을 평균 6점 차이로 멀찍이 따돌린 놀라운 점수다. 50대 혁신국가 중 90점을 넘긴 것도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생산부가가치(manufacturing value-added)와 교육 효율성(tertiary efficiency) 부문에서 1등을 했다. 교육 효율성이란 고등교육 등록과 과학 및 엔지니어링 전공자 집중도를 포함한 개념이다.
(사진=블룸버그)
그 뿐 아니다. 연구개발(R&D)과 첨단기술 집중도, 특허등록 활동은 2위에 랭크됐다. 연구원 집중도 역시 6위로 세계 최정상급이었다.
문제는 생산성 부문이다. 한국은 생산성면에선 거의 최하위권인 39위에 머물렀다. 블룸버그는 생산성에 대해 ‘15세 이상 취업자당 국내 총생산’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은 7개 과목 평균 점수는 분명 1등이다. 하지만 혁신지수엔 우리 약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연구하는데, 정작 제대로 만들어내는 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블룸버그의 지적도 매서웠다. “한국은 혁신에서 본전을 어떻게 뽑을지(how the economy can get the bang for its buck in innovation)”가 관건이라고 꼬집었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비교도 신랄했다. 미국에선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스타트업을 만드는 반면 한국에선 조직내 관리자에게 달려간다는 것. 블룸버그는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을 예로 들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의미였다.
조직적 요소 때문에 혁신적 행동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뼈아팠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절감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블룸버그 지적이 100% 정확하다고 볼 순 없다. 어쨌든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선정된 건 자랑스러운 일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우리 한계도 뚜렷하게 보여준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열심히 연구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 조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또 때론 그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못하다는 뼈아픈 지적이기 때문이다.
‘전교 일등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기분 찜찜했던 건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잠재력과 가능성은 탁월한 데 제대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 어쩌면 그 현실 때문에 더 슬펐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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