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오토매틱 차량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수동변속기 차량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운전하길 좋아하는 독일인의 경우 자동변속기 차량을 타는 것을 창피한 일로 여겼다. 운전을 못해 수동변속기로 면허를 따지 못했다고 '운전의 루저'라 놀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에서도 점점 자동변속기 차량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자동차 판매량이 늘어난 데다가, 도심 생활이 증가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량 정체 구간이 급격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히는 구간에서 클러치 밟고 2단, 3단으로 변속하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동변속기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부드러운 변속과 적절한 변속 타이밍은 안락함과 함께 연비효율까지 높였다. 변속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포츠카에도 자동변속기가 달리게 됐는데, 특히, 듀얼클러치의 등장은 수동변속기 찬양론자들까지 변절(?)하게 만들었다.
수동변속기, 사라질까?
독일의 한 자동차 전문가는 수동변속기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도 빠르게 자동변속기 차량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변화는 운전자들의 생활 스타일과 변속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계속 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동변속기에 최적화된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의 확대와 자동변속기 장착률이 높은 SUV의 성장세 등이 이런 흐름에 속도를 더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유럽 등 수동변속기 차량이 강세인 지역에서는 큰 틀의 변화가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콤팩트(C세그먼트)급 이하 차량에서는 여전히 수동변속기 비중이 높다는 점, 그리고 경제성을 중시하는 실속파들에게 수동변속기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반론에 근거가 될 만한 자료가 공개됐다. 세계 최대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이하 PwC)라는 곳에서 나온 것으로, 각 대륙별 변속기 사용 규모와 2020년 변속기 종류별 사용량 예측 자료다.
수동변속기, 의외로 많네
우선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대표되는 북미대륙의 경우 자동변속기의 사용량이 월등히 많았다. 2020년에는 자동과 수동변속기의 사용량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무단변속기와 듀얼클러치를 자동변속기로 분류하면, 사실상 북미에서는 수동변속기가 더욱 위축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전기차용 변속기와 흔히 반자동이라고도 부르는 자동화 수동변속기까지 포함하면 수동변속기는 북미지역에서 유일하게 감소세가 예상되는 변속기다.
반면, 남미는 북미와 달리 수동변속기 비중이 무척 높았다. 게다가 자동변속기와 듀얼클러치, 무단변속기 등의 성장세보다 수동변속기의 증가폭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의 경우 수동변속기가 조금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지만,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운전의 재미라는 관점에서 듀얼클러치의 증가와 수동변속기의 굳건함이 눈에 띈다. 북미와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수동변속기가 그리 쉽게 유럽대륙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과 일본, 호주에서는 무단변속기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전체적으로 변속기의 변화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승용차의 95% 정도가 자동변속기 차량이지만, 일본과 호주에서 수동변속기 비율이 꽤 많았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전체로 보면 역시 수동 비율이 자동보다 높은 걸 알 수 있다. 또, 자동차의 판매량이 늘면서 변속기 역시 종류별로 골고루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의 경우 수동변속기의 비중은 80%에 달했다.
자동변속기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나라만을 이야기를 한다면 수동변속기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놓고 보면 여전히 수동변속기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각 지역별 차이는 그 나라의 특수한 운전 문화 및 운전 환경에 따라 변속기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쨌든 유럽 시장에서 수동변속기는 여전히 많은 선택을 받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적어도 5년, 아니 그 이상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수요가 있는 한 자동변속기 못지 않게 수동변속기 기술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모터그래프기자 w.lee@motorgraph.com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www.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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