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위헌 심판대’ 오른 정신보건법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최근 개봉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실태를 다룬 영화 <날 보러 와요>에 나오는 대사다. 하지만 이는 영화 속에만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그간 <한겨레>가 만난 강제입원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얘기했으나, 이들을 ‘정신병자’로 낙인찍어 버린 세상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환자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진단만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하게 만든 정신보건법 제24조. 오는 1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정신보건법 24조 1항과 2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이 열린다.
2013년 강제입원 당한 박경애씨
자녀들이 재산노리고 감금 동의
팔다리 묶이고 기저귀 ‘인권침해’
자녀들 고소취하 대가 겨우 탈출
자기결정권 없는 강제입원 76%
대부분 격리·욕설·폭행 등 당해
2013년 11월3일 밤, 집에서 자고 있던 박경애(60)씨는 갑자기 들이닥친 3명의 남성에 의해 손과 발이 포승줄에 묶였다. 끌려간 곳은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 독방에 갇힌 그에게 간호사는 ‘코끼리 주사’를 놓았다. ‘이 주사를 맞으면 코끼리도 쓰러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간호사는 정신을 차린 박씨의 옷을 벗기고 종이기저귀를 채웠다. 다시 팔다리가 밧줄에 묶였다. 이틀 동안 밥은 한 끼도 주지 않았다. 3.3㎡가 채 되지 않는 공간에는 좌변기가 있었다. 박씨는 나중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변기 물까지 먹었다고 했다. 그는 왜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는 그를 인격장애로 진단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의 입원 의견이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박씨를 정신병원에 가둔 이들은 그의 자녀들이었다. 그는 이혼한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식 2명과 입양한 자녀 2명을 홀로 키웠다. 하지만 자신의 돈을 사기쳐 가로챈 입양한 딸의 남자친구를 고소한 것이 화근이었다. 자녀들은 박씨가 평생을 벌어 장만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40억원대의 건물을 매각하려고 시도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자들 상당수는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입원 뒤 시장·군수·구청장에게 퇴원을 청구할 수 있고, 정신보건심의위원회가 이를 심사하도록 돼 있지만,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박씨는 그해 12월 병원이 소재한 시의 정신보건심의위원회에 퇴원을 청구했지만, 위원회는 “병력 정보로 보아 의료적 소견은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전국 시군구별 정신보건심의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 구제율은 12.7%에 불과하다.
박씨는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공중전화를 이용해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목사의 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변호사를 선임해 2014년 1월 법원에 ‘인신보호구제’를 청구했다. 인신보호법은 정신병원 등 시설에 부당하게 수용된 사람들이 법원 심리를 통해 수용이 해제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박씨가 구제 신청을 한 지 하루 만에 자녀들은 그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병원을 옮긴 지 18일 만에 가까스로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 퇴원할 수 있었다. 자신을 감금한 자녀들을 고소한 것을 취하한 대가였다.
박씨의 삶은 엉망이 돼버렸다. 임차인은 그가 없는 동안 전세 기간이 만료돼 전세자금을 받지 못하자 강제경매를 신청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집은 헐값에 경매로 넘어갔고, 남은 돈으로 대출을 갚았다. 통장에 있던 돈은 애들이 다 가져갔다.” 지난달 <한겨레>를 만난 박씨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정신병원에서 당한 폭행과 약물 후유증이라고 했다.
지난해 박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정신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법원은 지난해 5월 박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가족들의 동의와 전문의 진단만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한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과 2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강제입원된 정신병원에서 인권을 짓밟히는 일은 박씨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신병원 입원 환자 4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0.2%가 격리와 강박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다. 기저귀 착용 등 존엄성을 침해당했다는 응답은 20.6%, 욕설과 심리적 인격 훼손을 느꼈다는 대답도 16.3%나 됐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홍아무개씨가 쓴 메모와 그림을 보면, 그 실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손과 다리를 피도 안 통할 정도로 세게 묶는다. 동아줄로 침대 다리와 난간에 여러 번 묶는다. 팬티를 벗기고 기저귀를 채운다. 독방에는 오로지 휴대용 변기가 하나 있을 뿐이다. 병동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원무과 앞에 앉아서 소리쳤다. ‘보호사가 자꾸 때려요. 무서워요. 집에 제발 보내주세요’라고.”
정신보건법은 가족 간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종종 악용된다. 김아무개(31)씨는 2013년 집 근처에서 납치당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대학병원 의사인 아버지는 평소 시민운동을 하는 김씨가 못마땅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통화할 때 “네가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보낸 거 아니다. 네 맘대로만 하려고 하니까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 달 동안 구금된 뒤 풀려났다. 2012년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김씨처럼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강제입원이 무려 75.9%였다. 환자 스스로 입원하는 비율은 24.1%에 불과했다.
강제입원은 환자를 많이 유치해 수익을 올리려는 사설 정신병원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2012년 정신보건 입소자들의 의료보장은 63.6%에 달한다. 입원환자 1인당 매월 약 100만~150만원의 비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의사의 진단 방법 역시 별도로 규정되지 않아 불과 몇분간의 대면진단만으로 강제입원이 결정된다. 정신병원은 의료급여 예산을 지급받는 방법으로 수익을 얻기 때문에 정신병상수는 당연히 수익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탓에 정신병원에 장기 감금된 피해자의 상당수는 가족에 의해 버려져 국가가 전액 의료비를 부담하는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기도 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종합병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낫지만 정신과만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환자에 대한 치료 필요성이 있더라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보호자나 정신과 전문의만 입원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되고, 사법부가 이를 판단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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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 가능케한 ‘정신보건법’ 한번 들어가면 퇴원 ‘바늘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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