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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변화 늦추려는 자동차, 속도내려는 IT

Freedom-x 2016. 8. 23. 08:52

 38만4,000명, 176만6,000명.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내놓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규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들이다. 먼저 완성차 및 관련 부품기업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만 33만8,000명이며, 총 제조업 종사자의 11.6%를 차지한다. 그런데 정비와 판매, 보험, 운수, 금융, 연료 등의 간접 종사자를 합치면 규모는 176만6,000명으로 넓어진다. 국내 총고용 2,559만명의 6.9%에 해당된다. 4인 가족을 기준하면 최소 700만명 이상이 자동차산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이 휘청하면 한국경제 또한 흔들린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갑자기 자동차산업의 규모를 언급하는 배경은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 때문이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전기 동력의 다양한 자율주행 이동 수단 개발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테슬라는  더 이상 내연기관에 매달리지 말자는 신호를 보내며 기존 자동차산업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졌다. 게다가 EV의 전력원을 태양에서 얻어내면 그야말로 친환경 이동 수단이 되는 만큼 대기오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자동차산업 집중 현상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폭스바겐그룹과 벤츠, BMW 등이 건재한 독일, 푸조와 르노가 활보하는 프랑스, 그리고 토요타, 닛산, 혼다 등의 일본 등 흔히 말하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이 활발하다. 

 물론 테슬라의 주장에 대부분 사람들은 이견을 나타내지 않는다. 궁극적인 방향은 테슬라가 제시한 게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EV가 내연기관의 대안이 된다 해도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다. 빠른 변화는 기존 산업의 급격한 몰락을 의미하는데, 자동차산업은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빠른 변화가 가져올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서다.
일례로 오래 전 현대차가 YF쏘나타를 내놓을 때 스티어링 휠을 유압식에서 전동식으로 교체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전동식은 2.4ℓ 제품에만 들어갔는데, 이유는 2.0ℓ에도 적용할 경우 유압식 펌프를 만드는 협력업체가 한 순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협력업체가 문을 닫으면 산하 6~7개의 또 다른 협력업체가 함께 무너지는 구조여서 부품 하나를 쉽게 바꾸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기존 자동차산업은 EV 시대로 변해가는 속도를 조절하려고 애를 쓴다. 기존 완성차 부품사들이 생존을 위해 EV 부품도 개발,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완성차회사들은 ‘동반성장’이란 말을 쓴다. 완성차회사가 연구개발 및 마케팅으로 판매 규모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협력사들의 공급망 유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급격한 변화는 한국 뿐 아니라 자동차 선진국으로 불리는 각 나라의 정부도 부담이다. 140년 동안 내연기관 시대에 맞춰 만들어 놓은 제도적 기반이 흔들리는 데다 자칫 빠른 변화를 주도할 경우 기존 자동차산업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칠 수 있어서다. 

 반면 견고한 자동차 산업구조를 단숨에 바꾸지 못하면 결코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IT 산업론자들은 거대한 완성차산업의 규모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빠른 혁신'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점진적 변화는 자동차회사의 체질을 쉽게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IT 기업들의 완성차산업 진출을 방해하거나 적대시하는 시선을 유도할 수밖에 없어서다.

 흔히 EV의 나라로 노르웨이를 많이 언급한다. 그런데 노르웨이 EV를 바라보는 자동차와 IT의 시각은 정반대다. IT 옹호론자들은 노르웨이가 정책적으로 EV를 보급, 성공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게다가 EV에 다양한 IT 기능을 접목시켜 미래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자동차 쪽 시선은 다르다. 노르웨이 EV 확산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필요한 전력을 대부분 친환경적인 수력으로 충당하는 것 외에 자동차산업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바꿔야 할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EV는 여러 이동 수단 중 하나로 받아들인 것이고, 수력 기반의 남는 전력을 사용해 환경오염을 줄였을 뿐이라고 말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3차 산업혁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시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기존 제조물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시켜 공산품을 IT 제품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꽃으로 자율주행자동차를 지목하며 빠른 변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140년 동안 만들어진 완성차산업의 구조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견고해 변화에 속도를 내기란 매우 어렵다. 이를 두고 '자동차회사의 태만'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만큼 구조를 바꾸는데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자동차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다.

 권용주 편집장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