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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손녀'만 그러는 게 아니다

Freedom-x 2018. 12. 4. 13:43

[한겨레21] 사장 가족들의 갑질 만연… 
신체·언어 폭력에 정신과 상담받는 직원

MBC 화면 갈무리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의 세계에 뛰어든 지 17년. 그녀가 새로 취직한 회사는 프랜차이즈 본사였다. 사장을 포함해 5명이 일하는 작은 사무실, 프랜차이즈를 알려 가맹점을 늘리는 업무를 맡아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회사생활은 할 만했다.

그런데 20대 청년이 과장 직책을 달고 있었다. 사장의 아들이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회사에 와도 늦게 나왔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사무실 컴퓨터 고치는 일 정도 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조만간 인터넷 쇼핑몰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일은 하지 않으면서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갔다. 그래도 될까 싶었지만 사장님 회사니까 뭐 괜찮겠지 생각했다.

“이 씨, 이게 죽으려고”

10월 말이었다. 사장 아들이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놓지 말라고 했다. 전날 모두 퇴근하고 나서 홍보팀장 컴퓨터에서 확인할 게 있었는데 비밀번호 때문에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필요할 때 이야기하면 비밀번호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사장 아들인 과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과장 그냥 걸지 마세요.

팀장 회사 물품이지만 제 업무 컴퓨터예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요즘 회사에서 패스워드 다 설정해두라고 해요.

과장 회사 건데 무슨 개인정보예요. 뭐 숨기는 거 있어요?

팀장 휴대전화에 뭐 숨기는 거 있어서 비번 걸어놔요? 요즘엔 정보보호 권장하는 거 모르세요?

대화를 주고받던 과장이 소리를 질렀다. “걸지 말라고! 이 씨~, 이게 죽으려고.”

그녀는 충격이었다. 열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이런 모욕을 당한 일은 직장생활 17년에서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옆에 앉아 있던 본부장과 상무를 향해 말했다. “들으셨죠? 저 명예훼손으로 신고합니다.” 그러자 사장 아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주제도 모르는 게 어디서….”

그녀는 치욕스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쌌다. 얼마 뒤 사장 아들이 다가왔다. 뭐하는 거냐고 했다. 동료들끼리 싸울 수도 있는 일이고,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이게 죽으려고”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표에게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본부장과 상무가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본부장에게 대표 아들이 한 얘기를 듣지 않았느냐고,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었다. 본부장은 “일하느라고 들은 것도 같고 못 들은 것도 같다”고 했다. 상무는 묵묵부답이었다. 과장의 폭언을 제지하고 말려야 할 책임자들이 비겁한 태도로 일관했다. 괜히 끼어들어 사장에게 밉보일 게 두려울 수는 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아들의 갑질을 방치하는 회사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집에 가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조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회사를 때려치웠다.

“직장생활 17년 만에 이런 치욕은 처음입니다. 사장이 그랬어도 화가 났을 텐데 아무 권한도 없는 아들에게 모욕당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상사들이 사장 아들의 횡포를 외면하고 감싸는 걸 보니,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 회사. 사장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직원들을 감시했다. 일하다 벌어지는 손해는 직원 돈으로 물어내라고 했고, 필요한 소모품도 개인 돈으로 사게 했다. 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반말, 욕설, 인격 무시는 일상이었다.

끊이지 않는 ‘가족 갑질’ 제보

더 참기 힘든 건 가족들의 횡포였다. 사장은 아들, 딸, 조카 등 친인척을 데려왔다. 일하지 않는 아들을 서류상 등기이사로 올려놓고 월급을 챙겨갔다. 아들과 딸은 맘에 들지 않는 직원을 CCTV가 없는 회의실에 불러놓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 날이었다. 야근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한 사원이 있었다. 그러자 사장의 딸은 1만원을 내밀었다. 직원은 돈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점심시간, 사장의 딸은 회사에서 밥을 사는 것이라며 법인카드를 던졌다. 카드가 직원의 가슴에 맞고 땅에 떨어졌다. 다른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였다.

“마치 도가니 같은 곳에 있다가 나온 것 같아서 현재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직책도 없는데 사무실에 나와 “네가 회장이냐?”며 진상을 부리는 사모, 회장 부인과 아들, 사촌과 사촌의 아들과 동생이 떼로 근무하며 직원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회사…. 사장 부인, 원장 남편, 대표의 자녀들이 벌이는 ‘가족 갑질’ 제보가 끊이질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남 창원의 한 회사 사장은 아들의 대학교 리포트를 대신 쓰라고 시켰다. 낮에는 회사 업무를 보고, 밤에는 사장 아들 숙제를 해야 했다. 견디다 못한 제보자는 부당한 지시라며 15일 뒤 퇴사하겠다고 사직서를 냈다. 그러자 사장은 지금 당장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회사는 월급을 주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당사는 귀인의 퇴사로 구입비 등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바, 이에 급여를 상당 기간 보류함을 알려드리며, 이에 대한 법률적 검토 후 급여를 처리하고자 하오니 이 점 양해 바랍니다.”

그는 직장갑질119를 찾았다. 직원 동의 없이 업무상 과실을 이유로 임금에서 ‘손해배상금 공제’(상계)는 근로기준법 제43조 1항 ‘임금 전액 지급 원칙’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따로 해야 한다.

직장을 구하기 힘든 시대, 부모 ‘빽’으로 회사에서 감투를 쓰고, 마치 사장처럼 갑질을 일삼는다. 사장 딸·아들이 출근하지 않는데 월급을 받아가고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업무상 횡령,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 여러 직원들 앞에서 폭언하고 치욕감을 느끼게 했다면 모욕죄로 고소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습과 뭐가 다른가

“조선(일보)만 저러는 거 아닙니다. 제가 저런 집에 운전기사 했습니다. 소격동 k갤러리, 논현동 S케미컬 외손녀 등등. 꼬마들 갑질 대단합니다. 필리핀 보모 배를 발로 걷어차질 않나, 70대 요리사 아줌마에게 접시를 던지려 하고 운전하는 기사 얼굴에 장난감 물총을 쏘질 않나, 애엄마가 차에 안 타고 있으면 ‘내가 엄마랑 똑같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잘리고 싶어’, 이루 말로 옮길 수도 없다. 조선일보만 저러는 거 아니다. 저 꼬마들이 자기네 회사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거지로 알고 있다.”

‘조선일보 손녀’ 사건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후원계좌 010-119-119-1199 농협)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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