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Fintech)와 스마트폰 등장으로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 이른바 지갑 없는 비현금지급결제 시장이 개화했고, 발 빠른 일부 국가는 전자지급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수립했다. 한국도 동전 사용을 최대한 줄여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다. 핀테크 기술을 활용해 동전을 카드 등 다른 결제 수단으로 대체해 관리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비현금 지급수단의 총 거래건수, 거래금액, 거래수익은 각각 7894억건, 782조달러, 4920만달러를 기록해 2010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익성 악화를 경험한 전 세계 금융사는 물론 IT기술을 접목한 신 전자화폐 수단이 속속 등장하면서 비현금지급결제 시장 선점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은행 총 수익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현금지급수단 거래수익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연평균 7% 감소했다.
최근 지급결제산업은 경쟁심화, 규제 및 감독강화, 소비자 지급결제 행태와 결제수단 선호도 변화 등에 따라 변혁기를 맞았다.
◇지갑을 없애라...‘Cashless Society’ 경쟁
선진국 주도로 현금사용을 제한하거나 장기적으로 이를 전자결제 형태로 대체하는 방안이 소리 없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비현금지급수단 총 거래금액과 거래건수가 연평균 6~8% 증가해 2020년에는 각각 209조달러, 3157억건을 기록할 전망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비현금지급수단 거래규모는 직불카드 거래 증가에 힘입어 연평균 3% 증가했다.
특히 신용카드개혁법과 금융개혁법 제정 등 지급결제 관련 규제 강화는 미국 카드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연간 지급결제 수익이 약 250달러 감소할 전망이다. 이에 현지 금융기관은 수익강화를 위해 기존 신용카드 사업모델 개선작업과 핀테크 산업 등 신규 수익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2020년 기준 유럽 비현급지급수단 총 거래건수와 거래금액은 각각 1556억건, 208조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유럽 내 금융기관도 각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신지급결제 전략 구축에 나섰다. 지급결제 인프라가 안정적이고 상품개발 기법이 발달한 서유럽에서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는 비현금지급 거래건수와 금액 증가율이 13%에 육박할 전망이다. 2020년 기준 거래건수는 2125억건, 거래금액은 30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핀테크로 중무장해 ‘비현금 사회’ 추진
최근 한국은행은 비현금지급결제 시장을 대비해 금융결제망 전면 개편에 착수했다.
은행 총수익 중 절반 이상이 비현금지급수단 거래 수익으로 바뀌었고 핀테크 등 지급결제 산업 변화로 차세대 금융결제망을 통해 시장 욕구를 조기 해소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지급결제 분야 중장기 과제를 담은 ‘지급결제 비전(vision) 2020’을 공개했다.
한은은 우선 영국 스웨덴 등이 운영 중인 현금 없는 사회 모델을 연구해 우리나라에서 ‘동전 없는 사회’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국가들은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현금을 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다른 유럽 국가들은 자금 세탁 방지 등을 목적으로 100만∼500만원 이상 거래 시 현금이 아닌 수표나 계좌이체 등 수단을 이용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한은은 관련 연구를 거쳐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 도입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한은이 검토하는 방식은 동전으로 받게 되는 거스름돈을 선불카드에 충전해 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9500원짜리 물건을 살 때 현금 1만원을 냈다면 거스름돈 500원을 고객에게 주지 않고 해당 금액만큼 고객 카드에 충전해주는 것이다.
박이락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동전은 사용하기 불편하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소액 결제망을 이용해 동전을 대체할 방법이 있는지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한은이 발표한 중장기 전략은 차세대 한은 금융망 구축과 금융정보화 사업 확대, 디지털통화·블록체인 기술 등을 활용해 지급결제 패러다임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금 없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인식 아래 한은도 세계 지급결제 생태계 변화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한은 지급결제 중장기 전략은 국내 금융망을 업그레이드 한다는 단기 목표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해외 국가와 지급결제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생존 의미도 담고 있다.
◇현금통화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
현금은 교환 매개수단이므로 비현금 지급 수단과는 대체 관계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보통신기술 혁신 등으로 비현금 지급수단이 지속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현금 사용이 필요 없는 사회인 ‘Cashless Society’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미국, 독일, 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실시한 지급수단 사용실태 서베이 결과를 살펴보면 거래금액 비중 측면에서 직불카드, 신용카드 등 비현금 지급수단은 증가해 온 반면에 현금은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처럼 비현금 지급수단 발달이 현금거래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해 보이는 반면 현금통화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지 않다. 지난 수십년간 비현금 지급수단 이용이 꾸준히 확대돼 왔으나 주요국 현금통화잔액은 경제성장 규모 확대에 따라 대체로 증가세를 보였다.
OECD 13개국 현금통화수요 결정요인을 분석해보면 현금통화수요가 물가, 금리 등 현금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 요인에 의해 주로 좌우되며 비현금 지급수단 발달은 주로 거래적 용도로 사용되는 저액권 수요만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일본에서 전자화폐가 빠르게 확산됐지만 경제주체가 전자화폐와 현금통화를 함께 보유하는 행태를 보임에 따라 기존 현금통화 수요를 대체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카드 사용액의 소득공제 정책 등으로 1999~2008년 중 신용카드 이용액이 연평균 26% 급증했다. 특히 카드는 주 사용 업종 및 건당 이용금액 측면에서 비현금 지급수단 중에서 현금과 가장 유사하므로 신용카드 사용 확대에 따라 현금 거래는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비현금 시대, 지갑없는 ‘PAY’ 전쟁 촉발
현금 대신 전자결제 시장이 부상하면서 각종 페이 플랫폼 경쟁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애플페이, 삼성페이에 이어 올 상반기 LG페이까지 등장할 것으로 보여, 소비자 지갑을 대체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핀테크 산업 활성화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등을 앞두고 기존 전통 은행뿐 아니라 IT기업과 제조사까지 페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간편 지급결제 시장에서 한바탕 합종연횡과 격전을 눈앞에 뒀다.
전문가들은 2017년 글로벌 모바일 결제 시장이 7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직구와 역직구 시장 성장, 중국향 페이전쟁이 촉발되면서 ‘페이 전쟁’은 올 하반기 정점을 이룰 전망이다.
고객 기반이 강한 IT기업과 금융사, PG사, 유통사, 온라인커머스 등이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로 시장 대응에 나섰다. 나이스정보통신, 한국정보통신, KG이니시스 등 시장 장악력이 높은 밴사와 PG사도 간편결제는 물론이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등 모바일 결제 진영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 하반기 최대 이슈는 삼성페이와 애플페이, 그리고 LG페이 경쟁이다. 그런데 이들 경쟁은 ‘지갑’과 경쟁이란 말이 더욱 어울린다.
핀테크 산업 확대에 힘입어 글로벌 간편결제 시장도 고공성장 중이다.
모바일기기 보급 확산과 O2O(Online-to-Offline) 시장 성장이 온라인, 모바일 결제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는 2011년 1000억달러 내외에서 2017년에는 720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또 온라인 상품 시장이 2016년 1조8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모바일 상품시장 규모는 61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시장도 글로벌 시장 패턴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국내 온라인 쇼핑시장은 2010년 27조원 규모에서 2014년 45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18.1%다.
김효찬 여신금융연구소 실장은 “최근 IT기반 지불결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업 및 운영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며 “개도국 지급결제 현대화 지원과 국가 간 소액결제망 연계사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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